오늘의 생각
쇼펜하우어가 말한다.
“행복은 불행의 반대말에 불과하다.”
“행복은 결핍이 충족될 때의 만족감이다.”
나는 이 말에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없다. 그러나 감정적으로는 저항하고 싶다. 만약 쇼펜하우어의 말이 맞다면, 행복은 주도적으로 성취하는 감정이 아닌 소극적으로 주어지는 감정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정의는 소박한 사전적인 정의이다. 사전에 행복이란 이렇게 정의되어 있다.
happiness, n. The state of pleasurable contentment of mind; deep pleasure in or contentment with one's circumstances. <옥스퍼드 영어사전> |
번역하면 행복이란 마음의 즐거운 상태이고 자신의 상황에 대해 깊은 기쁨과 만족감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이런 사전적 정의에 쇼펜하우어가 말한 결핍은 없다. 결핍에 대한 반대로 행복을 정의하는 것은 행복의 범위를 축소하는 것이며, 행복의 범위가 축소되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우리들의 가능성이 줄어들게 된다. 즉 행복을 적극적으로 추구할 공간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행복은 적극적으로 추구할 가치가 있는 덕목이다. 마음을 항상 즐겁고 기쁘게 먹는 일은 인생을 건강하고 풍요롭게 살아가는데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근심, 걱정, 우울, 불안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상태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행복한 감정을 유지하고자 하는 정신무장이 필요하다.
내가 기뻐서 웃는 게 아니고 웃어서 기쁜 것처럼 내가 즐거워서 행복한 게 아니고 행복하기 때문에 즐거운 것이다.
물론 조증 환자처럼 매일, 매시간 즐거운 상태의 행복을 느끼는 것은 위험한 일일 수도 있다. 자칫하면 미친 사람처럼 취급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강조하는 것은 매시간 행복을 느끼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행복은 짧게 지나간다. 쇼펜하우어도 이에 대해 같은 의견이다. 불행의 시간은 길고 끝없는 어두운 터널과 같고 행복은 그 터널 끝에 잠시 빛나는 불빛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항상 불행하다고 말하는지도 모른다. 행복이 짧다는 사실은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을 바보로 만든다. 불꽃을 향해 온몸을 던지는 나방같이 짧은 행복의 순간들을 위해 긴 인생을 산다는 건 오만하고 무모해 보인다.
그러나 행복은 그렇게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불행이 지속될 것 같아도 행복의 순간은 다시 찾아온다. 불행 뒤 행복이 온다는 사실은 우리를 다시 희망적으로 만든다. 노자는 도덕경 58장에서 이런 말을 했다.
‘화(禍)에는 복(福)이 기대고 있고 복(福)에는 화(禍)가 숨어있다.’
행복과 불행은 언제나 함께 있음을 말한 훌륭한 말이다. 행복과 불행이 한 몸과 같다면, 인간이 불행의 시간을 견뎌내고 잠깐 찾아오는 행복의 순간을 제대로 맞이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행복은 거저 얻는 것이 아니다. 짧은 순간이라도 행복을 쟁취하려는 도전정신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쇼펜하우어가 말한 고통과 무료함이 불행의 근원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행복이 불행의 반대말일 뿐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저항한다. 불행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살아가기보다 순간적으로 찾아오는 행복의 순간을 음미하며 살아가고 싶어서이다.
그러기 위해 조증환자로 취급될지언정 매일 아침 거울을 보고 나를 향해 힘껏 웃어주고 싶다. 행복을 사로잡기 위한 노력은 힘차고 활기찬 아침에서 시작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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