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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필사 기록

따라 쓰기만 해도 글이 좋아진다.(30일 필사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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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내용

책을 쓴다는 것은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나를 혹은 누군가를, 또는 무엇인가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책을 쓴다. 책 쓰는 고통을 온전히 홀로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랑의 결과로 책이라는 자식을 낳게 된다. 자식은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패를 걱정해서 자식을 안 낳진 않는다. 모든 자식이 유명인이 되고 효자 효녀가 되는 것도 아니다. 자식은 그 자체로 기쁨이고 축복이다.
-강원국, 「강원국의 글쓰기」, p.266


오늘의 생각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필사를 해야 한다."

 


글쓰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후 롤모델로 삼은 작가가 두 명이 있다. 한 명은 '주식투자란 무엇인가'를 통해 한국의 주식투자서 중 종합적인 내용을 가장 완결성 있게 담아낸 박경철 작가이고, 또 한 명은 '거꾸로 읽는 세계사', '유시민의 경제학카페' 등 많은 베스트셀러를 써서 글쟁이의 모범이라 불릴만한 유시민 작가이다. 

에베레스트 산맥은 구경만 하자.

 
두 작가를 롤모델로 삼은 이유는 윤동주, 박완서와 같은 넘지 못할 문학적 재능을 가진 사람들은 내가 넘보기에 너무나 큰 산과 같았기 때문에 박경철, 유시민 작가의 수준이라면 한번 도전해 봄직하지 않을까 하는 치기 어린 발상이었다. 초보 등산가가 에베레스트를 오르겠다고 정하는 것은 너무 비현실적이니까 지리산이나 한라산을 올라보는 것은 어떨까?라는 겁대가리 없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지리산, 한라산을 오르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야트막한 동네 뒷산이라도 올라봐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두 작가에게 어떻게 하면 산을 잘 오를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그때 두 작가에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바로 좋은 글을 '필사'하라는 대답이었다.

 
나는 말 그대로 초보 등산가이다. 등산복도 없고 등산화도 없다. 장비 탓을 하는 것을 비겁해 보이니 솔직하게 고백하자. 나는 '둘레길'도 숨이 턱턱 막혀 못 오르는 저질체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초보 등산가에게 '필사'라는 건 너무 반가운 일이었다. 마치 '산에 오르지 않아도 된다. 등산길 입구에서 알림판을 보며 등산 코스를 먼저 익히면 된다.'라는 말과 같이 너무 쉬운 일 같았다. 이렇게 쉬운 길이 있었다는 사실에 고양된 나는 새해 첫날부터 제대로 필사를 시작했다. 

일단 좋은 글이 뭔지를 모르니 필사 연습용 책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필사 연습용 책 중 나에게 딱 맞는 책을 골랐다. 내가 필사 연습용 책을 고른 기준은 다음과 같다.
 
1. 필사 내용이 풍부할 것.
2. 필사 내용에 대한 설명이 있을 것.
3. 매일 실천이 가능한 적절한 분량일 것.

 
'따라 쓰기만 해도 글이 좋아진다.'는 필사 초보자에게는 완벽한 지침서였다. 필사 내용들은 문학, 철학, 에세이 등에서 엄선된 작가들의 문장을 추렸고, 거기에 친절한 과외선생님 같이 저자가 필사 내용과 관련된 짧은 에세이를 적어 놓았으며, 매일 작성하여 30일간 완성할 수 있도록 목표설정도 적절하게 되어있었다. 

 
필사 내용은 내가 쓴 공책 기준으로 대부분 3줄이 넘지 않았다. 그래서 10번씩 반복해서 작성해도 공책 한쪽을 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필사 시간도 그리 길지 않았다. 매일 한 30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필사글을 10회 정도 완료했을 때, 롤모델인 두 작가(박경철, 유시민)님으로부터 두 번째 지령이 도착했다.
 
"필사를 하고 그에 대한 본인의 글을 적어보세요."
 

 
'아...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사는 수동적인 활동이지만 글쓰기는 능동적인 활동이다. 능동적인 활동은 대게 하기 힘들다. 시험공부가 그렇고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것이 그렇다. 글쓰기는 내게 아직 어려운 활동이었다.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시키면 해야지. 당장 블로그를 개설하고 필사한 내용을 토대로 내 멋대로 글짓기를 시작했다. 문맥은 엉망이었고, 주제와 근거, 적절한 예시가 없는 정말 꼴사나운 글들이었다. 이런 글을 쓰다 보니 부끄러웠다. '내가 뭐라고 글을 쓰고 있지?'라는 생각, 시쳇말로 현자타임이 왔다. 그때 내가 책에서 필사했던 문장이 나를 응원해 줬다. 
 
"쓰는 게 뭐 대단한 것 같지? 그건 웬만큼 뻔뻔한 인간이면 다 할 수 있어."
-정세랑, 시선으로부터 , p.166
 
글쓰기는 뻔뻔한 인간이면 다 할 수 있다니! 내가 못할 것이 없었다. 나도 한번 대차고 뻔뻔하게, 낯짝 두껍게 살아보고 싶었는데, 글쓰기에서 그런 욕망을 풀어버릴 수 있다니 너무 좋은 기회였다. 이런 깨달음이 있고 나서 글쓰기는 살풀이하는 무당의 굿판 같았다. 아침마다 일어나서 필사를 하고 화장실에서 글감을 정리한 후 바로 글쓰기를 시작했다. 필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10개 정도 글을 쓰고 나니 글의 품질도 제법 괜찮아 보였다.
 
"정말 따라 쓰다 보니 글이 좋아졌다." 

오늘 30일 필사를 완료하고 글을 쓴다. 초보 등산가를 성심성의껏 가르쳐 주신 필사 지침서의 저자 '글밥' 김선영 선생과 작별할 시간이다.

이제는 야트막한 동산에 스스로 올라보고자 한다. 스스로 책을 읽고 필사할 글감을 찾아서 글을 쓰는 것을 30일간 해보려고 한다. 지리산, 한라산을 등반하는 것은 아직 먼 훗날의 이야기일지 모른다. 하지만 일단 등산을 시작했다는 그 사실이 중요하다.
 
글쓰기를 통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 것이다. 이건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의 이야기이다.  

필사

필사여행을 떠나는 초보를 위한 상냥한 지침서 "따라쓰기만해도 글이 좋아진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