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내용
공동 주방에서 부치는 달걀냄새가 온 방실을 점유하고 있었죠. 스탠드가 꺼지고 소방벨이 울린 것은 그때였습니다. 누전이나 방화는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단지 그동안 울먹울먹 했던 것들이 캄캄하게 울어버린 것이라 생각됩니다만.
-박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을 먹었다.』, p.111

오늘의 생각
“아빠, 왜 아프리카 어린이들은 가난해요?”

유튜브에 나오는 유니세프 광고를 보고 아이가 묻는다. 멋들어진 답변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가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나는 “돈이 없어서 그래.”라는 멋없는 답을 하고 말았다.
“왜 가난한 사람이 존재할까?”
이 질문에 깊이 생각해 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나누는 기준이 무엇인지도 불분명한 상황에서 왜 가난이 존재하는지 묻는 것은 말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가난한 삶을 살아본 경험이 있었다면 아이의 질문에 적절하게 답할 수 있었을까? 사실 그것도 쉬운 문제는 아닐 것이다. 가난한 삶을 살았다면 하루하루 살아내기 바빴을 것이고, 가난의 이유 따위를 물을 정도의 여유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까지 가난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살만한 집이 있었고 끼니를 굶지도 않았으며 학비가 밀리거나 허름한 옷을 입고 다니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 집이 부자는 아니었다. 부모님은 항상 대출이자를 갚는데 허덕이셨고, 아버지의 사업이 망한 적도 있으며, 돈이 궁핍하여 갈등하시던 부모님의 모습들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가난하지도 않고 부자도 아닌 그렇다고 만족스러운 중산층도 아닌 어정쩡하게 가난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
결혼하고 세대주가 된 지금의 나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집은 은행 이자 빚을 내는 것이 월세살이와 다름이 없으며, 중고차를 끌다 망가지면 수리비를 아끼려고 부품을 사서 자가수리를 하고 있다. 그리고 매달 불어나는 생활비에 저축은 꿈도 못 꾸고 있으니 부자가 아닌 어정쩡한 가난은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나는 가난을 싫어한다. 그래서 이런 나를 부끄러워하고 있다. 가난을 피해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내가 너무 삿된 사람 같고, 가난한 사람을 마음 깊이 동정하고 도움을 줄만큼의 여유가 없음이 부끄럽다.
가난한 사람에 대한 동정심,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인류애, 부자가 될 수 있는 공정한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다는 공명심 중 하나라도 내게 있다면 이렇게 부끄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나도 ‘빈부격차’라는 거창한 문제에 대해 한번도 제대로 생각해보지 않은 소인(小人)에 불과하다.
이렇게 부끄러워한다고 오늘 갑자기 내가 성인군자(聖人君子)가 될리는 만무하다. 그래서 내가 오늘 할 수 있는 일은 이런 나의 부끄러움을 고백하는 일이다. 부끄러우면 뭐라도 하게 되니 말이다.
맹자는 부끄러움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 無羞惡之心 非人也(무수오지심 비인야),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가난을 배척하며 부끄러움을 느낀 나는 오늘부터라도 부끄럽지만 사람이 되고자 한다.
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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