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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필사 기록

죽음과 공포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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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필사내용

“봄은 내의와 달라서 옆사람도 따뜻이 품어줍니다.

저희들이 봄을 기다리는 까닭은 죄송하지 않고 따뜻할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p.148


오늘의 생각정리

 


어제 문득 죽음이 두려워졌다. 죽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던 천진난만한 나에게 갑자기 공포영화의 악귀처럼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엄습했다. 왜 그랬을까? 왜 그렇게 죽음이 공포스러웠을까? 아마도 내가 사람의 죽음이라 것을 꽤나 많이 경험해서 일지도 모른다.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장의사의 지도하에 모든 분들의 시체 닦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죽음이 남긴 그 처량한 시체의 모습은 더 이상 생명이 있던 시절의 그분들의 모습이 아니었다. 돌아가신 세분 중 가장 친밀했던 친할머니는 다행히 임종을 지킬 수 있었다. 죽음이 할머니의 숨결을 앗아가는 순간까지 할머니 손을 꼭 쥐고 '좋은 곳에서 다시 만나요.'라고 울며 보내드렸다. 죽음의 순간을 경험하고, 죽음이 남기고 간 시체의 탁한 색깔과 시체를 소독하기 위한 지독한 약품의 냄새를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죽음이 얼마나 두렵고 허무한 일인지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내세가 없다고 믿는 나와 같은 불신자에 대한 신의 천벌일지도 모른다. '너는 죽으면 완전 끝이니까 평생 두려움에 빠져 살거라!'라는 신의 버림을 받은 불신자의 결말이다. 이런 불신자를 위해 수학자 파스칼은 신을 믿는 것이 인간에게 유리하다고 다음과 같이 설득한 바 있다.

 

"신이 존재하지 않지만 신을 믿는 경우에는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다. 하지만 신이 존재하는 경우 신을 믿지 않으면 지옥으로 떨어질 것이다."

 

나는 신을 믿지 않기 때문에 신이 존재하는 경우에 대한 보험이 없다. 착하게 살았다고 자부할 수 없는 인생이기에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나 같은 중생은 영락없는 지옥행이다. 그래서 보험으로라도 죽기 직전에 종교를 믿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큰 죄를 짓지 않고 평범하게 살다가 결국 가는 곳이 지옥이라면 너무 심하지 않은가?

 

내세가 있든 없든 신이 존재하든 하지 않든 일단 죽음은 끝이다. 이 세상에서 살던 나의 삶이 끝나는 것이고, 나의 우주가 소멸하는 것이다. 책의 마지막 문장, 그 끝의 마침표를 읽으면서 책장을 덮듯 나의 인생은 죽음이라는 마침표로 누군가에 의해 덮인다. 무엇이든 끝이라는 두렵고 쓸쓸한 것이다. 졸업식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들의 선율이 쓸쓸하고, 헤어지는 연인들의 발걸음이 유독 더디고 슬픈 이유는 그것이 끝인 것을 아는 사람들 때문이다. 

 

오늘은 느닷없이 죽음에 대한 상념에 잠겼다. 필사는 봄에 대한 따뜻한 문장을 했으면서 죽음이라는 차가운 감성에 빠지고 말았다. 유독 바람이 매섭고 날씨가 추운 겨울을 나고 있는 상황이라 봄에 대한 따뜻한 문장이 역설적으로 현재의 추운 겨울을 더 느끼게 하고 말았다. 겨울은 죽음, 한 계절의 끝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필사내용

 
내일을 위해 한마디만 더
 

나는 죽어서 없어지지만 내 글은 누가 읽어줄 것이다. 영원하지 않더라도 나를 기억하고 내 글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건 그대로 내가 조금 더 살아남는 방법일 수 있겠다. 영생을 바라는 건 욕심이라 해도 인간에게 주어진 짧은 수명보다는 조금 더 길게 살고 싶다. 그렇게 조금이라도 오래 살아남아 언젠가 삶이 지겨워질 즈음 바람에 먼지가 휘날리듯 자연스럽게 가면 좋겠다.